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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물에 대한 철학적 고찰
  • 작성일2023/08/17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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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대한 철학적 고찰

 

국가화재평가원

여용주 원장(소방기술사 / 공학박사)

 

 

제가 사는 양평에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흐릅니다. 팔당댐이 생기면서 강물의 유속이 느려져 한겨울에는 강의 표면이 자주 얼어붙기도 하는데, 가끔씩 거길 지나다 보면 누군가 얼음위로 지나간 흔적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사람이 아니라 고라니겠지요.

 

강의 표면이 얼어붙은 모습은 매우 자연스러운 모습이라 한번도 의심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상한 점이 많습니다.

 

액체상태의 물질은 온도가 내려갈수록 밀도가 커지는데, 물의 경우에는 특이하게 4 ℃ 까지 밀도가 커지다가 다시 밀도가 작아집니다. 그러다 0 ℃ 얼음이 되면 액체보다 밀도가 작아져 위로 떠오르게 됩니다. 분명 특이한 현상입니다. 이런 특성은 물의 표면부터 얼음 층을 만들고, 얼음이 단열층이 되어 깊은 고의 물 온도를 영상으로 유지시켜 생명체가 살 수 있도록 해줍니다. 마치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든 물질처럼…

 

비정상적인 물의 큰 표면장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식물 성장에 필수적인 물은 높은 가지까지 이동시킬 수 있는 것은 큰 표면장력으로 인한 모세관 현상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식물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또한 범상치 않은 현상입니다.

 

이와 같이 물은 생명체를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 특이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물의 특이한 성질 중 또 한 가지는 증발잠열이 가장 큰 물질로서, 특히 불을 제압하는데 더 없이 훌륭한 소화약제이기도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물을 구성하는 수소와 산소는 연료 즉, 불이기도 합니다. 금속화재에 물을 뿌려서는 안 되는 이유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물은 곧 불이기도 하면서 스스로를 파괴(소멸)할 수 있는 상극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 됩니다.

 

 

조금 비약해서 얘기 하자면 극단적인 사랑의 좌절이 극단적인 미움을 낳게 되고 극단적인 행복의 끝은 극단적인 불행으로 치닫는 것의 이유를 물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지나침이 모자람만 못하다는 옛말이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을 물을 통해 알게 됩니다. 물은 균형 잡힌 삶을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고 얘기해주고 있는 것이죠.

 

모든 만물은 끊임없이 변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변화라는 것 아마도 시간이 흐르니까 변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만일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세상이 성립 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즉 세상은 변화가 있어야 비로소 세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변화가 마치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착각할 뿐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변화는 엔트로피가 커지는 방향으로 흐릅니다. 극한의 무질서 즉 에너지가 0으로 수렴하기 위해 엔트로피는 무한대로 커지게 될 것이고 결국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빅뱅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 후 다음 빅뱅을 준비한다면 역설적이게도 엔트로피는 다시 0인 상태가 됩니다. 이것 또한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한쪽이 극단으로 치달으면 다른 한쪽의 극단에서 만나게 된다는 이치와 같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이 또한 물과 연관하여 생각해보면, 물의 산소는 산화를 통해 엔트로피 증가에 기여하는 원소로서, 세상을 이루는 한 축인 변화(시간)를 상징하고, 수소는 세상을 이루는 물질의 시초였던 원소로서 세상의 시작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물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참으로 오묘하고 신비로운 물질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지만, 살면서 누수는 정말 참기 힘들었습니다. 그 또한 큰 뜻이 있었으리라.

 

물에 대한 짧지만 무거운 단상이었습니다.

 

 본 칼럼은 국가화재안전저널 제 31호에 기고된 글입니다.